박수근·장욱진의 또 다른 얼굴, 신문 삽화로 만난다
1950년대 신문 지면 한쪽에 실렸던 작은 그림들이 7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다시 미술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박수근, 장욱진, 김기창, 박래현, 박서보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서울신문에 그린 삽화 207점이 한 권의 화첩 형태로 경매에 나온다.케이옥션은 오는 30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9월 경매를 연다. 이번 경매에는 총 117점, 약 110억원 규모의 작품이 출품된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서울신문 지면에 실린 작가 61명의 삽화 207점을 모은 화첩이다. 추정가는 2억6000만~4억원이다.
이 화첩은 한 수집가가 당시 신문에 게재된 삽화를 오려 모으고, 각 작품 아래 작가 이름을 적어 보관해온 자료다. 전체 207점 가운데 연하장 5점이 포함됐고, 실제 신문 게재 사실이 확인된 작품은 120점이다. 작가가 글과 그림을 함께 기고한 사례부터 다른 필자의 글에 삽화로 더해진 경우, 기사와 별도로 독립된 그림처럼 지면에 실린 경우까지 당시 신문 속 미술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제작 연도가 확인된 작품도 적지 않다. 1956년 47점, 1957년 38점, 1958년 47점, 1959년 15점이 포함됐다. 1950년대 후반은 한국전쟁 이후 미술계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다. 하지만 이 시기 실물 작품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신문 삽화는 작가들의 조형 실험과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화첩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은 한국 미술사의 굵직한 흐름을 이끈 인물들이다. 박수근과 장욱진을 비롯해 김기창, 박래현, 박서보, 김창열, 이응노, 천경자 등 61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국전 중심의 아카데미즘이 강했던 당시 미술계에서 백우회, 모던아트협회, 현대미술가협회, 신조형파 등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아 나섰던 작가들이다.
삽화의 양식도 폭넓다. 풍경과 인물, 정물 같은 구상적 그림부터 자연을 바탕으로 한 반추상, 기하학적 추상, 수묵담채, 펜 드로잉까지 다양한 표현이 담겼다. 신문 삽화라는 제한된 지면 안에서도 작가들이 각자의 선과 구도, 감각을 실험한 흔적이 드러난다.
장욱진의 1958년작 ‘무제’는 종이에 마커로 그린 작은 작품이다. 단순한 선과 압축된 형상은 장욱진 특유의 간결한 조형미를 떠올리게 한다. 박서보의 1959년작 ‘무제’는 종이에 수묵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청년 시절 작가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훗날 단색화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기 전, 그의 초기 조형 탐색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케이옥션은 이 화첩이 단순한 삽화 모음집을 넘어 1950년대 후반 한국 미술계의 분위기와 작가들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작품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작가들의 초기 작업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도 높다고 봤다.
이번 경매에는 근현대 작가들의 회화 작품도 함께 나온다. 장리석의 1972년작 ‘문전’은 추정가 500만~2000만원에, 박영선의 ‘모델’은 800만~3000만원에 출품된다. 문학진의 ‘정물 B’, 황염수의 ‘풍경’, 권옥연의 ‘여인’, 박고석의 ‘쌍계사길’ 등도 경매 목록에 올랐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됐다. 이대원의 1996년작 ‘농원(배꽃)’은 추정가 1억9000만~2억8000만원으로 책정됐다. 경기 파주 농원에 화실을 마련한 뒤 30여년간 이어온 농원 연작 가운데 하나로, 원색의 점을 쌓아 올린 듯한 화면이 특징이다.

서도호의 ‘Floor Module’도 새 주인을 찾는다. 1997년부터 2000년 사이 제작된 이 작품은 추정가 3억6000만~6억원이다. 작은 PVC 인물들이 유리판을 떠받치는 구조로, 개인과 집단, 공간의 관계를 탐구해온 서도호의 대표 연작 ‘Floor’ 계열 작품이다.
경매 출품작은 19일부터 30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전시장은 쉬지 않고 운영된다. 같은 기간 국세청 압류물품을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온라인경매도 함께 열린다. 온라인경매 1차 출품작에는 구찌, 까르띠에,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가방과 주얼리, 시계 71점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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