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범죄 잡는 CCTV가 시민도 본다
모스크바의 거리와 지하철, 공공시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도시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범죄를 줄이고 생활 편의를 높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동과 행동이 국가의 감시망 안에 놓이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14일 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전역에는 현재 약 30만대의 폐쇄회로 CCTV가 설치돼 있다. 이 카메라들은 생체인식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돼 시민의 얼굴을 식별하고 위치를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당국은 이 시스템을 통해 강력범죄가 잦았던 과거의 모스크바가 한층 안전한 도시로 변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모스크바에서는 얼굴 인식 기술이 일상 속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 시민들은 지하철 요금을 얼굴 인식으로 결제할 수 있고, 일부 행정 절차나 계약 업무도 신분 확인 과정 없이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도입으로 도시 운영은 빨라지고, 범죄 용의자를 추적하는 경찰의 대응 속도도 높아졌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이런 편의의 대가로 개인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여러 대도시 역시 CCTV망을 갖추고 있지만, 모스크바의 감시 체계는 생체정보와 통합된 중앙집중형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도시 곳곳의 카메라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망으로 묶이면서,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시민을 가장 촘촘히 감시하는 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감시망은 범죄 수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러시아 당국은 생체인식 기술을 이용해 반정부 집회 참가자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물을 찾아내는 데도 활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철도역에서는 러시아 록 뮤지션이 지명수배 중인 우크라이나 인사와 닮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히는 일도 있었다. 경찰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가발 여부를 확인한 뒤에야 석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런 통제는 더 강화되는 흐름이다. 2022년 러시아인 수천명이 징집을 피해 해외로 떠난 뒤, 당국은 인공지능 기반 전자 징집 통지서를 도입했다. 이 통지서는 기존 종이 문서와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다. 정부 포털 앱을 통해 통지를 받은 시민은 신체검사나 징집 절차에 응해야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출국 제한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28세 사진작가 블라트의 사례는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는 지난 3월 정부 포털 앱으로 의무 신체검사 출석 통지서를 받았고, 출석하기 전까지 출국 금지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그는 당국의 추적을 우려해 지하철 이용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트는 모든 데이터가 국가로 넘어가기 때문에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고, 시민의 모든 발걸음이 추적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모스크바의 첨단 치안 시스템은 기술이 도시를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같은 기술이 권력의 손에 들어갔을 때 시민의 사생활과 정치적 자유를 얼마나 쉽게 제약할 수 있는지도 드러낸다. 안전을 위한 카메라가 언제 감시의 눈으로 바뀌는지, 모스크바의 현실은 그 경계가 생각보다 얇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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