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잡는다” 중국 반도체의 질주

중국 최대 D램(DRAM)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주가가 장중 최고 476%까지 치솟으면서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다. 시가총액은 한때 3조1400억 위안까지 늘어나 중국공상은행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더 이상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도 미·중 무역분쟁을 계기로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능성이 높은 일부 기업에 정부 지원을 집중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 공급망이 막히자 전략을 바꿨다. 이제는 외부에서 들어오던 기술과 장비가 끊겨도 자체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선도 기업 역시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기보다 시장을 통해 성장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중국은 이 같은 정책 전환에 앞서 정부 주도의 반도체 육성 정책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가 만든 대규모 반도체 펀드인 ‘대기금’이다.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2014년 1기 대기금이 출범했고 약 25조원이 투입됐다. 2019년 조성된 2기 대기금에는 약 38조원이 마련됐다. SMIC와 YMTC, CXMT, 하이실리콘 등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대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고 해서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우한훙신반도체(HSMC)다. HSMC는 2017년 약 20조원을 투자해 14나노와 7나노 공정을 만들고 매달 3만 장의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HSMC는 TSMC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 장상이 박사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정부의 신용보증을 이용해 ASML의 첨단 DUV 노광장비도 들여왔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출신 인력과 최첨단 장비를 확보한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2019년 말 HSMC는 공사대금 5100만 위안을 지급하지 못해 소송을 당했다. ASML 장비는 구입하자마자 은행에 담보로 제공됐다. 조사 결과 반도체 공장은 추가 건설조차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상이 CEO는 2020년 중반 회사를 떠나며 당시 상황을 ‘악몽 같았다’고 회고했다. 사라진 정부 재정만 최소 23억달러로 집계됐다.
한때 미국 마이크론 인수까지 추진했던 칭화유니그룹도 무너졌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으로 꼽혔던 이 회사는 2020년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이후 대대적인 조사가 진행됐고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부패와 비리 혐의가 잇따라 드러났다. 산업정책을 담당했던 샤오야칭 산업정보기술부장이 체포됐고, 대기금을 총괄했던 딩원우 사장도 구속됐다.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사형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같은 실패를 겪은 뒤 중국 정부는 정책을 수정했다. 중앙정부가 기업에 무분별하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제한했고 지방정부의 지원도 동결했다. 2024년 조성된 대기금 3기는 미국의 수출규제로 공급이 어려워진 노광장비와 첨단소재,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 집중했다. 선도 기업들은 상장 등을 통해 민간의 견제를 받도록 했다.
CXMT의 성장 과정에는 중국 정부와 지방정부의 장기적인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창업자 주이밍은 중국 칭화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실리콘밸리의 기술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전자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반도체 업계에 진출했다.
주이밍은 미국 네트워크 보안회사에서 반도체 개발 업무를 맡은 뒤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설계회사 ‘기가디바이스’를 창업했다. 기가디바이스는 글로벌 3위 노어플래시 기업으로 성장했고 2016년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후 주이밍은 중국의 D램 자립을 위해 2016년 허페이시 정부와 함께 ‘506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반도체는 막대한 돈을 먼저 투자한 뒤 생산공정이 안정될 때까지 장기간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산업이다. 단기간의 수익을 기대하는 민간 벤처캐피털이 장기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이유다. 허페이시는 초기 투자금의 75%에 해당하는 135억 위안을 부담했다.
허페이시는 이전에도 지방정부가 직접 투자해 기업을 키운 경험이 있었다. 2007년 금융위기 당시 디스플레이 기업 징둥팡(BOE테크놀로지)에 175억 위안을 투자했고, 이를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20년 파산 위기에 놓였던 전기차 스타트업 니오(NIO)에도 70억 위안을 투자해 성과를 거뒀다.
이 같은 방식은 ‘허페이 모델’로 불린다. 지방정부가 단순히 행정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투자자로 직접 위험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관련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지역으로 끌어들여 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우는 전략이다.
CXMT는 메모리 기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중국 기업과 다른 방법을 택했다. 경쟁사였던 푸젠진화는 미국 마이크론의 기술을 도용했다가 영업정지 제재를 받고 몰락했다. 반면 CXMT는 파산한 독일 메모리 기업 키몬다의 특허 기술을 인수했다. 불법적인 기술 도용 대신 특허를 직접 확보하는 방식으로 기술 장벽을 넘은 것이다. 키몬다는 파산하기 전까지 세계 2위 D램 제조업체였으며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CXMT의 생산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2019년 DDR4 양산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2020년 월 4만 장 수준이었던 웨이퍼 가공 능력을 2025년 월 25만 장까지 확대했다.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5년 3%에서 2026년 8%로 증가했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 CXMT는 이 같은 시장 호황을 바탕으로 10조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다시 투자 재원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도 중국의 장비 국산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0% 미만에서 30% 이상으로 높아졌다. 장비 수입이 어려워지자 중국 기업들은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자국산 장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미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구형 장비를 대량으로 사들인 뒤 여러 부품을 조합하고 개조해 사용하는 방식도 활용했다.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장비업체에서 사실상 밀려난 중국계 엔지니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 기술 개발을 이끈 것도 영향을 줬다. 중국은 낮은 수율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정부 보조금으로 보전했다. 그렇게 양적 성장이 이어지면서 기술 수준도 함께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우라와 중웨이(AMEC), 상하이마이크로전자(SMEE) 등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성장했고,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노광장비도 DUV 수준까지는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UV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이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현재 중국 반도체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평가도 있다. CXMT가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했지만 D램 양산 수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낮다. 수율은 반도체 생산 원가와 직접 연결된다. 같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더라도 수율이 낮으면 제품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HBM 분야의 격차도 여전히 크다. 한국 기업들이 HBM4를 생산하는 가운데 중국은 아직 HBM3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기술 격차는 4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DUV 장비를 활용해 7나노 이하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대량생산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한다면 중국산 반도체와 장비를 선택할 이유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자급이라는 목표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수익성이 낮은 구형 기술부터 차근차근 발전하는 전략은 일반적인 시장 논리만으로는 추진하기 어렵다. 중국에는 거대한 내수시장과 강한 제조업 기반이 있고, 국가 자원을 특정 산업에 집중할 수 있는 체제도 갖춰져 있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생태계와는 별도의 길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오랫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주도하는 3강 체제를 유지해왔다. 메모리 반도체는 후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세 기업은 일정한 점유율을 유지하며 시장 변화에 대응해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문화가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지적도 있다. 절대적인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가 AI 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의 추격을 허용한 것도 이러한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기술 경쟁력의 깊이만 키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소재·부품·장비를 포함한 반도체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넓히고,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까지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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