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환율 공포 속 여야 '25조 추경안' 전격 합의
중동 전쟁의 불길이 길어지면서 우리 경제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고유가 상황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원·달러 환율마저 1500원 선을 돌파하는 등 서민 경제가 한계치에 다다르자, 정치권이 마침내 응급 처방을 위해 손을 잡았다. 여야가 중동 전쟁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오는 4월 10일까지 합의 처리하기로 전격 발표하면서, 민생 회복을 위한 25조 원 규모의 대규모 예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정치권에 따르면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30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나 4월 임시회 일정 합의문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정부는 조만간 국무회의를 거쳐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일정은 매우 촉박하게 돌아간다. 내달 2일 추경안에 대한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7일부터 8일까지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종합정책질의와 부별 심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10일 본회의에서 최종 합의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추경은 고유가와 고환율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취약계층과 기업을 살리기 위한 성격이 짙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이번 추경을 응급 수혈이라고 정의하며 신속한 처리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 시내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0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전반적인 물가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야당은 고유가 부담 완화,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을 이번 추경의 3대 핵심 축으로 설정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재원 마련 방식이다. 재정건전성에 민감한 여론을 의식한 듯, 이번 추경은 추가적인 국채 발행 없이 오로지 초과 세수만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나라 빚을 더 내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곳에 돈을 풀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지원 방식을 놓고는 벌써부터 여야 간의 기 싸움이 팽팽하다. 특히 민생지원금을 어떤 방식으로 지급하느냐가 이번 예결위 심사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을 두어 핀셋 지원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측은 지역화폐 방식의 지원금이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겨냥한 매표용 현금 살포라고 규정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물가 불안을 부채질할 지역화폐식 예산 투입은 위기 관리가 아닌 지방선거용 행태라며, 이러한 아마추어식 국정 운영이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물려줄 것이라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반면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러한 여당의 주장을 어불성설이라며 일축했다. 그는 지역화폐는 대형마트나 온라인몰에서는 쓸 수 없고 오직 지역 골목상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소상공인을 살리는 진정한 의미의 핀셋 지원이라고 반박했다. 과거 코로나 시기에도 여야 합의로 지역화폐 지원을 진행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된다는 여당의 논리는 명백한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재정건전성 논란에 대해서도 야당은 당당한 입장이다. 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로만 재원을 조달하는 만큼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영역이라는 것이다. 고유가와 고환율, 고물가라는 3고 현상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국가가 재정 역할을 확대해야 하는 확장적 재정의 시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제 공은 국회 상임위원회로 넘어갔다. 추경안은 내달 6일까지 10개 상임위의 예비 심사와 의결을 거친 뒤 예결위로 회부된다. 천준호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합의된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오는 10일까지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지원 방식을 둘러싼 여야의 시각 차이가 워낙 뚜렷해, 예결위 심사가 본격화되는 시점부터는 고성과 설전이 오가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와 기름값에 시름하고 있다. 텅 빈 장바구니를 마주한 국민들에게 이번 25조 원의 추경안이 실질적인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권의 소모적인 정쟁 속에 빛이 바래게 될지 전 국민의 눈과 귀가 4월 국회로 쏠리고 있다. 여야가 민생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합의안을 도출해낸 만큼, 실제 집행 과정에서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동 전쟁의 여파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시험하고 있는 지금, 정치권의 지혜로운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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