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전초기지로 큰 기대를 모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코리아 빌리지'가 때아닌 '국적 불명' 한복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0월, 사우디의 대표적인 글로벌 축제인 '리야드 시즌'의 핵심 공간에 K-팝, K-푸드, 전통 공예 등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화려하게 문을 연 코리아 빌리지가 본래의 좋은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부실한 고증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현장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스태프들이 착용한 의상으로, 한국의 전통미와는 거리가 먼 기괴한 디자인에 태극기만 어지럽게 붙여놓은 모습이 현지 교민과 방문객들의 SNS를 통해 알려지며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9일, 현지 한국인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해당 의상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서 교수는 "공개된 영상과 사진 속 의상은 전통 한복의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잘라 말하며, "무엇보다 태극기만 덕지덕지 붙여놨다고 해서 한복으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번 행사가 중동 지역에 한국 문화를 종합적으로 알린다는 긍정적인 취지로 시작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고유 의상인 한복에 대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며, 문화적 상징을 다룰 때는 철저한 고증과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서 교수는 이번 논란이 최근 노골적으로 '문화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중국에게 좋은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한복의 원조가 자신들의 '한푸'라는 억지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국제 사회의 여론을 호도하려는 상황에서, 이처럼 근본 없는 디자인의 의상이 '한복'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중국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이다. 한국 문화의 매력을 알리려다 오히려 우리 문화의 근본을 흔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담겨있다.

 

이에 서 교수는 행사 주최 측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즉각적인 시정 조치에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그는 "주최 측은 논란이 된 의상을 제대로 된 전통 한복으로 하루빨리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통해 더 이상 SNS상에서 중동인들에게 한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K-컬처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만큼, 그 인기에 편승한 안일한 기획이 아닌,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접근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